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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내 컴의 추억

剛宇 2009. 9. 11. 18:30

 감기라 생각되어지는 증상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않는다. 설마.. 신종XX인가... 갑자기 과거의 일들이 떠오른다. 죽을때가 되어가는것인가...? --;

 본인이 처음 접한 컴퓨터는 불행히도 애플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SPC-1000이었다. Z80 계열의 8비트 PC였다. 저장장치로는 테잎(Tape)을 사용하였고, 본체와 키보드가 붙어있는 일체형이였다. 처음, 아는 형 집에 놓여있는 SPC-1000을 보고 눈을 땔 수가 없었다. 짝사랑하는 여인을 멀리는 바라보는 그 아련한 기분이랄까 --; 그러던중 국민학교에 SPC-1500 기종이 무더기로 들어왔고, 컴퓨터부라는것이 만들어진것이었다. 당연히 본인은 가입하였다. 수십대의 SPC-1500 기종과, 선생님 컴퓨터는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버까지 장착되어있었다. 맨날 테잎으로 가지고 놀다가, 플로피 디스켓을 봤을때의 그 경이로움은 가히 놀라웠다랄까. 그렇게 SPC-1500과 함께하는 GW-BASIC과 게임들로 국민학교 생활을 마치고...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중학교는 가난했던지, 컴퓨터부 같은것이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을 졸라 컴퓨터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두 군데의 학원이 있었는데, 한군데는 애플 기종이었고, 나머지 한군데는 IBM PC 호환기종이었다. 본인은 당연히 가격 싼(?) IBM PC 호환기종이 있는 학원을 가게 되었다. 학원에서 쓰던 기종은 SPC-3000. 16비트 교육용(?) 컴퓨터로서 본체와 키보드(86키)가 분리된 형태였다. IBM PC XT 호환기종으로서 보통 XT라 부르던 기억이 난다.  Intel 8088-I(10MHz) 프로세서를 탑재하였고, 메모리는 512KB, 5.25인치 2D 디스켓 드라이버를 장착하였고, 그래픽 카드는 허쿨레스 카드, 모니터는 모노크롬 모니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모니터는 진정한 그린(?) 모니터였다.
 학원에서 주로 했던 일은 게임이었다. --; 포트란, 코볼과 전자계산학개론등을 배웠긴 하지만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킹콩들이 빌딩들을 부수는 게임, 덱스터라는 2장짜리 게임(2번째장이 없어서 더이상 진행해보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 ㅠㅠ), 일반적인 복사방법으로 복사되지 않았던 람보라는 게임(COPY II PC 라는 프로그램을 써서 복사해야만 했다.)등 많은 게임이 있었다. 나중에서 카피보드(Deluxe option board, Transcopy)같은 하드웨어를 장치해야만 복사되는 게임도 나왔다. 그러고보면, 복사 vs 복사방지의 대결은 참 오래된것 갚다. 
 그리고 게임 세이브 파일을 조작하는것도 상당히 재미있었던것 같다. PC-Tools로 세이브 파일의 헥사코드를 편집하여 모든 능력치를 최대로 해서 게임을 하고 하였다. 그 당시 Big-Endian/Little-Endian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상태였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바이트의 큰 값이 뒤쪽에 저장된다는(Little-Endian) 것을 알아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시절 본인 최초의 컴퓨터를 얻게되었으니. 그 이름하여 SPC-3100s. 메모리가 640KB에다가 5.25인치 2D 드라이버가 2개 달려고, 그래픽 카드가 무려 CGA를 지원. 거기다가 한글 도깨비 카드까지 장착되어있었다. 그 당시 DOS에서 한글을 사용하려면 한글카드가 필수였다. K-DOS라는 한글 도스가 나왔긴 했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한글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얘기인데, 그 당시는 조합형 한글을 많이 사용한거 같다. 어찌된 노릇인지 한글 코드의 표준안이 2개가 되어버렸다. 조합형 한글과 완성형 한글. 당연히 한글 구성 원리에 입각하면 조합형 한글을 밀고 나갔어야했는데, 기술적인 문제였는지, 정치적인 문제였는지 몰라도, 엉터리 완성형 한글이 승리하여... 지금까지 유지되어오고 있으니 참 슬픈 노릇이다. 그 당시 한글 코드하면 나오는 얘기가 "똠방각하" 표현문제였다. 완성형 한글은 "똠방각하" 출력이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추후 확장완성형이라는 이상한 괴물이 나오면서 출력이 가능해지게 되었지만. 확장완성형은 코드도 아니여~~~(흔히 보이는 euc-kr이 완성형, MS949가 확장완성형이로고 보면 된다)
 이 당시 컴의 사운드는 사운드가 아니었다. 비프음~ 삑~삑~삑~ 소리만 내었다. 그 저질 소리에도 불구하고, 외장 스피커를 통해 소리를 들어보기 위해서 SPC-3100s의 배를 갈랐다. 내장 스피커 선을 분리하여 외장 스피커 선으로 연결하였다... 퍽~ 불행히 쇼트가 난것인지.. SPC-3100s은 침묵의 컴퓨터가 되어버렸다... ㅠㅠ 이럴수가.. 갖은 노력을 해보았으나 복구 불능이었다. 이대로 영원히 침묵속에서 살아야만 하는가...?
 좌절속에서 생활을 하는 도중 컴퓨터 잡지에서 애드립(AdLiB) 카드라는 것을 보았다. FM 11중 화음의 그 화려한 소리. 결국. 인고의 노력끝에 구입하고 말았다. 처음 장착하고 가동 시키는 순간..... 헉 아무런 소리가 안나는것이었다. 원래 비프음은 내장 스피커로만 나는것이었고, 애드립 카드를 쓸려면 애드립 카드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써야하는것이었다. --; 뭐 어쨋거나 애드립카드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애드립 카드하면 생각나는 게임이 있을것이다. 바로 "젤리아드". YS3처럼 액션형 RPG인데, 상당히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거기다 애드립 카드의 소유자만 느낄 수 있는 그 웅장한 사운드는~~ 끝내준다.

 Xenon 2라는 슈팅 게임도 재미있게 했다. 이 게임도 애드립 카드를 지원해줬기에 보다 실감나는(?)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이 게임들 뿐만 아니라, 모니터를 뒤집어 놓고 하는(?) 페르시아의 왕자도 참 재미있었던거 같다.

 중학교시절 "허풍"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이 놈은 이상한 기종의 PC를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MSX 였다. 그것도 MSX X-II / CPC-400s. 초 특급 슈퍼 울트라 하이엔드급 PC였다. 16비트가 난무하던 시절에 8비트의 길을 홀로 외로이 걸어간 멋쟁이인 것이다. 8비트 인것을 빼고는 사실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흑백 모니터가 난무하던 시절에, 전용 RGB 모니터를 사용하였고, 3.5인치 디스크 드라이버 사용. 비디오 입력단자에다. 기본 사운드도 빵빵한.. 최상의 게임용(?) 컴이였다.

 아 지금 봐도 구미가 당긴다... 이 MSX 게임은 일본 게임이 많았다. 그 유명한 아돌이 나오는 이스(YS) 시리즈, XAK 시리즈, 영웅전설, 대항해시대, 프린세스 메이커, 그라디우스 등등.. 정말 역작이 많았다.
 그 놈은 게임기도 종류별로 다 가지고 있었다. 그당시에 패미컴, 슈퍼 패미컴, 메가 드라이브, PC-엔진등을 모두 가지고 있었으니... 진정한 게임 매니아였다.